10월 11일 새벽 3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회원21인은 버스에 몸을 실고 김해공항으로 향하였다. 목적지는 제31회 뉴욕 미 동부 추석 대잔치 및 제17회 고국 농산물 박람회에 초청을 받아 고국의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그들의 뿌리 재발견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고성농요 공연을 위해 축소하여 여정을 꾸린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이란 대륙에 우리의 전통 농경문화 유산을 알리기 위해서 유난히 더웠던 여름부터 연습을 하면서 준비해 왔던 공연이다. 인천공항에서 10시30분 이륙하여 상공을 선회할 때, 황금 들녘의 누른 물결이 한눈에 들어왔다. 묘판에서부터 지금까지 노력한 결과물이다. 장장 비행기로 14시간 만에 뉴욕 공항에 도착했다. 날짜 변경선 때문에 시간상으로는 하루가 더 늦추어졌다. 공항에서 한 시간 거리인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마중 나온 한인 행사 책임자와 함께 내일 공연할 장소를 둘러보았다. 올해로 31회를 맞이한 뉴욕 한인 축제에 고국의 무형문화재 공연은 남사당을 이어 고성농요가 두 번째로 참여 하게 되었다. 이민을 하여 살고 있는 뉴욕시민에게 고국의 향수를 한껏 불어넣어줄 각오로 숙소인 크라운 플라자 호텔로 돌아왔다. 12일은 토요일 맑은 날씨 속에 이른 아침을 먹고 공연장으로 출발하였다. 우리는 조금이나마 교민들에게 고향의 정취를 알리고자 한복을 입고 출발하였다. 넓은 광장주위의 푸른 잔디는 목장처럼 넓게 보였고, 허드슨 강둑을 배경으로 고국에서 가져온 농 특산물들이 각 도별로 즐비하게 양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교민들이 한두 분씩 모여 들고 웅성이기 시작한다. 강둑 절벽에는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텐트촌이 즐비하게 두 줄을 지어 장관을 이룬다. 높은 공연 무대가 아시아 인 스타듐 운동장을 마주보고 강을 배경으로 조지 워싱턴 브릿지 주위는 유난히 다리가 많이 보인다. 이곳 행사장 주위는 교량의 예술을 진열해 놓은 것 같이 가지각색 고풍스런 다리도 많다. 강을 따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자연을 슬기롭게 이용하는 이지방의 자랑거리로 보인다. 조마조마한 마음에서 오후 4시부터 공연이 시작된다. 풍물소리에 관중이 모여들고 신나는 농요 소리에 매료되어 박수와 어깨가 들썩인다. 눈시울을 붉히며 칭칭이 소리에 모두가 하나 되어 함께 춤추며 광장을 따라 돈다. 모두가 하나 된 한마당 잔치가 되었다. 교민과 행사장 책임자 외국인 너나 할 것 없이 대한민국 만세와 함께 태극기가 물결친다. 나이 많은 할머니 세 분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 부둥켜 앉고 우신다. 앙코르 공연요청이 들어와 내일 공연을 1회 늘리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행사 진행 중 관중의 호응에 김석명 회장님의 떨리는 음성은 우리 회원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3일 일찍 출발하여 탈의실에 모여 준비 중이다. 푸른 잔디가 흰 천막 사이로 더 푸르게 보인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제 공연도 머릿속에 떠오르고 많은 생각이 난다. 농사일을 하고 있는 내가 우리 고성 들녘 논뚝에서 논을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동생 손잡고 어머님 모심는 논에 모밥 먹으러 가던 생각, 모심으며 노래 부르던 어머님의 목청 고운 소리가 귀에 쨍하게 떠오른다. 그때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 우리 농촌의 힘겨운 노동을 노래와 단결로 즐겁게 넘겨보자는 그 소리였다는 것을.....
점심때가 되면 잔디밭에 모여 그 흙 묻은 발을 닦으며 모여 앉아 박 바가지에 흰 밥 가득 감나무 잎 한 장 위에는 코끝을 넘어 목젖을 자극하는 침 솟게 하는 갈치 한 토막, 미역국에 햇 감자 토막이 입 안을 맴도는 생각이 난다. 내가 어릴 적 겪으며 자라온 일들을 이곳 뉴욕에서 옛 그리움을 생각게 하고 추억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개울을 두고 이쪽과 저쪽을 건너게 하는 돌다리 같은 일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현대화 기계화되는 옛날 우리 조상들이 서로의 일손을 도우며 품을 만들어 서로 도우며 농사일을 해 온 농사일 소리(농요)야말로 조상의 전래 풍습이 지혜로운 흥의 발상인 것 같다. 지금도 우리 집 창고 한 구석에는 버리지 못하고 한 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옛 농기구, 손 때 묻고 나무마저 좀 구멍이 송송한 나무, 쇠로된 보습마저도 사그라져가는 아버님이 쓰시던 쟁기, 이제는 어디로 갈지, 박물관 구석진 곳에라도 머룰 수 있을 런지. 아니면 내 머리 속에만 남을지 바라볼 뿐이다. 이제는 까마득하게 멀어져가는 옛 기억들을 오늘 만은 교민들 가슴 속에 한 뜸 한 뜸 정성들인 삼베옷 기워 입던 마음을 오늘은 모두 풀어 너덜 너덜한 마음을 오늘같이 볕좋고 기분좋은 가을날 까칠하게 풀 먹여 다듬 방망이로 두들겨 숯다리미 곱게 눌려 다려 교민들 가슴에 삼베옷 무명옷의 까칠하고 풋풋한 느낌을 농요소리와 함께 옛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고 싶다. 고성농요 보리타작 소리와 뒷소리가 신명나게 무대에 펼쳐졌다. 우리 공연의 뿌리는 우리 교민 동포 이민 역사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 따라온 것이다. 옛날이나 현재나 변하지 않는 것은 농사일 먹고 사는 먹거리 생산인 것이다. 방법이 다를 뿐이다. 잊혀져 잿불처럼 사라져 가는 농사일 소리가 새록새록 살아날 먼 미국 땅에서 우리 소리 농요를 알리고 재미동포 가슴 속에 모닥불을 뜨겁게 피워 올렸다. 무대 위 칭칭이 소리를 할 때 교민 대표 유시연 회장과 준비 위원장 이시준씨를 지게에 태워 교민과 하나 되어 가슴에 애환을 푸는 자리가 되었다. 무엇보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길놀이 마당에서는 그 넓은 광장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희고 검은 피부의 눈들이 우리 문화를 주시한다. 지금 교민 2세들의 반응은 국악의 생소함도 있겠지만 언젠가 우리 국악이 서양인의 어깨를 들썩이게 될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우리도 더욱 분발 노력하고 세계화에 부합하도록 노력이필요하다. 지금까지 고성농요를 발굴하고 노력한 김석명 회장님께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에 노력하고 계시는 뜻을 이제야 알 것 같고 우리 회원 모두 노력하여 바르게 가는 농요를 만들고야 말 것이다. 우리가 예사롭게 생각했던 문화유산을 멀리 있는 동포들의 눈으로 대신 보니 가슴에 무언가 와 닿고 어렵게 타국에서 고생한 그 많은 나날들을 떠올리면서 너도 나도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한민족의 마음의 탯줄이 눈에 보이지 않게 하나라는 것을 느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소개받은 교민들과 작별을 하고 워싱턴 시티로 출발했다. 백악관에 도착하여 국회의사당도 구경했다. 6.25참전 기념관에도 참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일찍 아팔라치아 산맥을 넘어 버스로 붉은 단풍이 물든 길을 따라 캐나다와 미국의 경계에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해 달리고 있다. 잎과 줄기가 다시 만날 봄날을 아쉬워하여 마음이 붉어졌나 헤어짐이 아쉬워 미움이 붉어졌나 가는 길마다 붉은 단풍이 수놓았다. 잎새마다 그들만 아는 사연이 물들인다. 넓은 대지 위에 푸른 초지와 아직 겨울 준비를 못 마친 옥수수밭 우리 농촌과는 모습이 많이 대조가 된다. 버팔로 공항 옆을 지나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했다. 잔잔한 큰 호수 옆에서 갑자기 유속이 빨라 천둥소리를 내며 물보라와 물방울을 하늘높이 내뿜어며 천길낭떠러지로 쏟아진다. 배를 타고 깊숙이 들어가니 가히 입을 다물지 못할 그 웅대함과 자연 조화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 옷 위로 쏟아지는 물방울을 훔치며 비취색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하늘과 바다의 사이를 연상할 정도다. 넓은 땅에다 참 좋은 자연 유산을 물려받았다. 축복받은 두 나라이다. 우리도 보이지 않는 행운의 민족이다. 우리 무형문화재도 교민의 성공한 모습처럼 갈고 닦아 빛 좋은 농요가 고생하지 않고 힘들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고성농요를 초청해 준 교민들께 감사하면서 살기 좋은 교민 사회를 만들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장장 30시간의 교통편을 이용하여 점심때에야 고성농요전수관에 도착했다. 고성농요를 아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2013년 10월18일
고성농요 회원 이 판 철 씀